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나의 유럽 교환학생 기회는 물 건너가게 되었다.
그러나, 유럽에 계속 미련이 남아 교환학생을 가려고 모아둔 돈으로 유럽여행이라도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친구와 함께 프랑스, 스위스를 약 2주 동안 가기로 계획하고 항공권 등 교통편, 숙소를 제외하고 정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파리에 도착한 후에도 어디를 갈지 하나도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정처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그 흔하다는 에펠탑도 대충 보고 끝냈고, 개선문이나 몽마르트 언덕도 안 가 봤고, 박물관들도 줄 서기 귀찮고 그냥 한국인 중국인들 천지여서 앞에서 사진만 찍고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냥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내가 간 곳이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인줄도 모르고 걷기도 하고 그랬다.
어쨌든 나는 유명 관광지를 굳이 애써 찾아가는 것보다 그냥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그 지역의 분위기를 느끼고, 아무데나 들어가서 밥먹고 하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파리에서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유명한 관광지를 간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소매치기의 소 자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정처없이 이곳저곳 걸어다니던 중, 지도를 보다가 근처에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서점이라면 무조건 들어가서 한참동안 나오지 않는 나이기에 그곳을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줄이 길게 서 있었다.
다행히 줄이 빨리 줄어들어서 생각보다는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
혹시 줄 때문에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보다 줄이 빨리 빠지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책방 입구 매대에는 중고책을 진열해놓고 있다.

책방 내부는 굉장히 올드&앤틱한 느낌이다.
서점 1층은 판매하는 책들, 서점 2층은 피아노와 올드북들, 포토존, 쉬는 공간이 있다.
내가 느끼기에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의 가장 큰 특징은 ‘큐레이션’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형서점처럼 십진분류표에 의해 인문, 사회, 자연과학, 기술과학 뭐 이렇게 나뉘어진 게 아니라, 독립서점처럼 LGBT+Q, 기후위기 같은 사회적 이슈별로 책을 진열해 놓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저런 비교적 급진적인 주제를 다룬 책들이 프랑스의 유명 관광지에 있다니…

사람들은 주디스 버틀러의 책을 가장 많이 보고 있었다.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로 된 책들을 갖다놓았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란 표현이 아닌, '기후위기(Climate Crisis)'로 정리한 것이 인상 깊다. 역시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책을 갖다 놓았다.
땅땅이나 어린왕자, 유명한 소설들을 빼고는 거의 다 영어책을 갖다 놓은 듯 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그래픽노블' 코너였다.
전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문화다양성 가치를 인정받은 도서들이 모여 있었다. 옛날에 잠깐 회사 다닐 때 우리나라의 유명한 만화 전문가들과 함께 전 세계의 훌륭한 그래픽노블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했었는데, 그때 나는 그래픽노블을 처음 접했었다. 그 만화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점은 '왜 이런 책들을 지금 알았지?'였다. 정말 이게 만화인가 싶을 정도로 깊이 있고 어려우면서도 복합적인 주제를 정말 훌륭하게 다루었다는 생각을 하며 이런 책들을 한국에서 많이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에 그때 후보로 나온 책들이 죄다 있었다. 이런 좋은 그래픽노블들이 대거 꽂혀 있는 서점이 프랑스의 유명 관광지라니...
우리나라 도서관의 어린이 도서 코너에 가 보면, 좋은 퀄리티의 어린이용 그래픽노블들이 정말정말 많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이 읽고 있는 책은 오락용 만화들이다.(물론 그런 오락용 만화들이 항상 별로라는 것은 아니지만...) 반면, 셰익스피어앤컴퍼니의 그래픽노블 코너에는 정말 좋은 책들이 많았으며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그런 책들을 읽고 고르고 있었다.
내가 문화사대주의자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Blue is Warmest Color(가장 따뜻한 색, 블루), 어린왕자 프랑스판, 셰익스피어북앤컴퍼니 엽서, 에코백을 샀다.
사실 한국에 번역되어 있지 않은 비문학 책을 사고 싶었다. 그러나 책방 안이 좁고 정신없어 천천히 하나하나 책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급한 대로 내가 평소에 읽고 싶었던 그래픽노블인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영문판을 샀다.
다른 것들도 사고 싶었으나, 그나마 저게 가격이 저렴했으며 문화다양성 도시인 파리에서 동성애 여성주의 만화를 구입한다는 그런… 상징성(?) 때문에 사게 되었다.
다른 것들은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걸 읽어야지..
또한, 나는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지만 그래도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어로 된 책을 사고 싶었다. 그나마 집에 한글판, 영문판이 모두 있는 어린왕자를 사면 비교해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프랑스어판 어린왕자를 샀다.
나머지 엽서와 에코백은 여기 서점 기념품용으로 샀는데, 에코백이 너무 예뻐서 한국에서 매일매일 들고 다닌다.
내가 초록색 옷들을 좋아해서 내가 가진 옷들과도 매우 잘 어울린다.
기념품으로 반드시 사길 바란다.

<위치 정보>

Shakespeare and Company
+33 1 43 25 40 93
https://maps.app.goo.gl/7Uf5YQN8fPdvmPsRA?g_st=ic
Shakespeare and Company · 37 Rue de la Bûcherie, 75005 Paris, 프랑스
★★★★★ · 서점
maps.google.com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 파리의 정서를 느끼고 싶다면 꼭 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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